제목 [남미 293차 세미프리] 그라시아스 남미!
작성자 손선미 작성일 2024-02-01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그 곳에서의 의미를 찾는 것은 스스로의 선택에 달려 있다. 같은 곳을 방문했어도 느낌의 종류와 강도는 모두 다르지 않은가. 여행을 떠날 땐 내 스타일을 고집하기보다 고정관념 없는 열린 태도가 중요하다고 되새기곤 한다. 일상을 떠나는 만큼 여행은 여행다운 것이 좋다. 그래서 나에게 익숙한 틀에 새로운 것을 억지로 끼어넣고 싶지 않아 여행지에서 맛보는 새로움을 오롯이 그대로 즐기고 그 곳에 그 모습들이 계속 남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돌아오곤 한다
이번 남미 세미 패키지는 여행의 틀을 제공받고 그 안에서 개인의 선택과 집중이 가능하다는 점이 신선하고 좋았다.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맘껏 뛰놀고 온 기분이다.

척박한 땅 나스카
아쿠에둑토는 물을 찾는 여정이다. 안데스 산맥에서 내려오는 지하수 수맥을 찾아 땅을 파고 수로를 건설했다고 한다. 나스카인들의 지혜가 놀라웠고 그들의 삶에 대한 의지가 놀라웠다.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척박하기 그지없는 그 땅에서 문명을 이루어내고 아직까지 밝혀낼 수 없는 수수께끼를 지닌 곳. 남미 여행의 시작이었다. 호기심이 생겨났다.

티티카카호수
이 좋은 문명 시대에 불편함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그들에게는 어떤 사명감이 있는 건 아닐까. 전통배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작은 원주민 소녀는 목소리도 작았다. 그 소녀가 살아갈 삶의 방식은 어떤 것이 될까. 속삭이는 듯한 노래를 들으며 그 소녀의 행복을 빌었다.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가는 사람들의 노력을 지지하고 공감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풍경 속에 녹아들고 싶어 우리도 함께 노래하자고 제안했다. 모두가 아는 노래는 아리랑! 어울렸다. 모든 민족은 고귀하다.

볼리비아는 개인적으로 결코 잊을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 곳인데다가 기찻길에서 사진을 찍다 넘어져서 부상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팀여행에 누가 될까 조심스러웠다. 팀의 사건 사고의 중심이 내가 되어 가는 상황이 낯설고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 될까 마음이 불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행운아라고 느낀 것은 우유니 2박 3일 지프차 투어 중이라는 것이었다. 차에 잠시 누워 쉴 수도 있었고 내 상황을 배려하는 사람들과 함께였기 때문이다.

우유니를 대표하는 사진을 보면 컨셉사진이 많다. 솔직히 말하면 내 눈엔 멋져보이지 않았다. 아름답고 고요한 이 풍경에 이런 알록달록함이라니! 헌데 팀 사람들과 함께 이런 저런 컨셉 사진을 찍다보니 또 즐거웠다. 이 또한 우유니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였구나. 궁금해졌다. 이런 컨셉 사진은 어떻게, 누구에 의해 시작되었을까?

비 내리던 아침의 마추픽추와 비내리던 저녁의 리우는 다른 분위기의 매력으로 다가왔다.
안개로 뒤덮여있던 비니쿤카와 예수상
그 모습이 드러나는 찰나의 순간, 벅찬 감동이 있으니
날씨가 어떠하든 그 자리에 가 보길 권하고 싶다.
‘그 곳에 내가 있었다‘라는 현장성은 나만이 느낄 수 있는 또다른 감동이니 말이다.

엘 찰텐으로 향하는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았다.
어느 순간 멀리 피츠로이 산봉우리가 보인다.
버스가 달릴수록 점점 더 가까워진다.
그 모습을 계속 보고 있자니 마음이 울린다.
그 동안 통증으로 풍경을 맘껏 누리지 못한 아쉬움이 컸던 탓인지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내 모습을 보았는지 버스 기사가 거울 속에서 흐뭇해한다. 피츠로이를 향해 끝없이 달릴 것만 같던 그 길 위에 마음 한자락 두고 왔다.

탱고는 음악이자 삶이자 슬픔이라 한다.
우울한 고독감과 격정적인 감성이 어우러진 음악과 춤은 아주 멋졌다. 특히 탱고의 악기인 반도네온의 연주는 내 마음을 건드리는 어떤 것이 있었다. 물론 춤도 훌륭했지만 어느새 난 눈을 감고 음악에 집중하고 있었다. 삶의 애환과 기다림의 아픔이 느껴졌다. 나에게 탱고는 슬픔으로 남았다.

폭포가 내뿜는 수증기
물이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
장엄한 폭포의 모습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신의 선물이라고 할 만하다.
이과수는 거대한 물이라는 뜻이라 한다.
사실 나는 사람들이 다 좋다고 하는 것을 가끔 외면하고 싶은 충동이 있다. 그래서인지 이과수 폭포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과수를 마주했을 때 정말 놀라웠다.
이 거대하고 웅장한 폭포를 우연히 발견한 탐험가 알바로가 된 기분이랄까. 275개의 폭포라니!
떨어지는 폭포를 바로 옆에서 바라보고 있으니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자연의 힘은 위대하다는 말이 바로 내 앞에 살아 있었다. 악마의 목구멍은 저 폭포의 4배 정도 된다 하니 다리 유실로 그 풍경을 보지 못한 게 너무나 아쉬워졌다. 또 와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만큼.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사람이다.

가는 곳곳마다 자신의 이익과 혜택을 내려놓았던 혹은 자신의 인생을 한 분야의 연구에 몰두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로 인해 세상은 조금 더 나아졌겠지. 멋진 일이다! 그들의 이야기로 인해 그 곳은, 그 자리는 더 의미있어졌다.

‘내 안에 남자있다’라며 센스있는 입담을 자랑하는 미아팀장님의 호탕함과 유머러스함은 정말 최고였다. 덕분에 많이 웃었다. 세상 다정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여러분~”을 외치는 목소리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단체 사진을 향해 움직이게 되었다. 돌덩이 같은 가방을 메고도 지침 없이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뿜어냈다. 진솔한 태도로 팀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현지인들을 존중하며 호흡하는 모습에 ‘아, 이 사람 진짜구나’싶었다. 내가 분명 언니인데 자꾸 의지하게 되는, 동생 같아지는 이 느낌은 대체 뭔지^^

‘한달이라는 긴 시간동안 어떤 사람들과 여행을 하게 될까?’ 살짝의 긴장감이 있었다. 남미를 여행하는 사람들이라면 여행 경험도 많을 것이고 여행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일거라는 생각에 사실 기대감이 더 컸던 것 같다. 역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팀원분들 모두 서로를 배려하고 격려했다. 특히 서로 주고 받는 약봉지에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체력적인 부담이 있는 여행임엔 분명하다. 그 고됨을 함께 이겨낸 동질감과 한달이라는 시간의 강력한 힘으로 팀 안에 동지애가 느껴졌다. 오랫동안 기억하고 생각하고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 인연의 힘이 있다면 언젠가 어딘가에서 또 함께 웃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꼬리뼈 골절이라는 진단을 받은 오늘도 난 다음 여행을 꿈꾸고 있으니 말이다.